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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희귀질환 게놈 진단 시대로 가는 길은 '산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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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리포트] 희귀질환 게놈 진단 시대로 가는 길은 '산넘어 산'

2022.01.08 06:00
생명윤리법·데이터법 물꼬 트나
유전자 해독 및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놈 데이터를 활용한 희귀질환 진단도 가능해졌다. 앞으로 더 정교한 질병 진단을 위해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유전자 해독 및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게놈 데이터를 활용한 희귀질환 진단도 가능해졌다. 앞으로 더 정교한 질병 진단을 위해서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미국 국립보건원 제공

2003년 처음으로 인간 유전체(게놈) 지도가 완성됐다. 당시 인류는 희귀질환을 비롯한 각종 유전질환을 곧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흥분했지만, 그때의 기술과 데이터는 아직 꿈을 실현시키기에 충분치 않았다.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게놈이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게놈 해독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고, 영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대규모 게놈 코호트(동일한 통계적 특성을 공유하는 집단)를 구축해 데이터를 쌓았다. 게놈으로 질병을 진단, 예측하는 정밀의료의 시대가 이제는 도래하는 걸까. 해외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 성과를 살피고 한국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최초의 인간 게놈 지도가 완성된 뒤 약 20년이 흐르는 동안 게놈 지도는 점점 정교해졌다. 게놈에 기반한 유전자 연구 성과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해 5~7월에는 99명의 과학자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이 6편의 논문을 통해 체내에서 기능을 할 지도 모르는 유전자를 100개 이상 새로 찾아냈다. 수백만 개의 유전자 변이도 확인했다. 


게놈 지도가 발전한 배경에는 해독 및 분석 기술의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 차세대 염기서열 해독기술(NGS)이 등장했다. NGS를 활용해 게놈의 염기서열을 모두 해독하는 전장 유전체 해독(whole-genome sequencing)이 가능해졌고, 인간 유전체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유전 변이를 탐색할 수 있게 됐다. 질병의 후보 유전자를 탐지하는 일도 가능해졌다.


게놈 해독의 발전 속도는 ‘무어의 법칙’을 능가했다. 무어의 법칙은 반도체 기술의 향상으로 컴퓨터의 성능이 대략 2년마다 2배 증가하고, 가격은 절반씩 떨어진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 당시 30억 달러(약 3조 537억 원)가 투입됐는데, 2021년 인간 게놈 해독 비용은 1000달러(약 118만 원) 아래로 하락했다. 분석 시간도 초기에는 한 사람의 게놈을 해독하는 데 십수 년이 걸렸지만, 지금은 48시간이면 충분하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게놈연구소장)는 “게놈을 해독하는 장비도 USB 크기로 작아졌다”며 “게놈이 질병 진단에 일상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 게놈으로 희귀질환 환자의 4분의 1 진단

영국은 게놈 정보를 이용한 질병 진단 가능성을 일찍이 알아봤다. 2012년 영국 정부는 암 환자 5만 명, 희귀질환 환자 5만 명 등의 게놈 정보와 의료 정보를 확보하는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18년 10월부터는 영국 내 전체 의료기관에서 모든 암 환자와 희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게놈 검사를 무료로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100만 게놈 해독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영국 국가보건서비스(NHS)가 수집한 50만 명 분과 영국인 유전체 은행인 UK 바이오뱅크의 50만 명 분의 전장 게놈을 2023년까지 해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희귀질환은 유전자 분석이 꼭 필요한 질병이다. 현재 희귀질환을 앓는 사람의 3분의 1은 15세를 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 희귀질환의 80%는 유전적인 요소와 관련 있기 때문에 사망률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지난해 11월 발표된 영국 게놈 프로젝트의 파일럿 연구는 이를 실제로 증명했다. 이번 연구는 NHS가 수집한 피험자 4660명, 2183가족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했다. 유전자 검사 이전 피험자들은 공통적으로 증상은 있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미진단’ 상태였다. 이번 연구에서 연구팀은 피험자 중 25%를 유전자 정보 및 의료정보로 진단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지능 장애, 청각 장애, 시각 장애 증상을 나타내는 환자의 40~55%를 진단했다. 참가한 가족 구성원이 많은 경우 진단율이 높았다.


박 교수는 “그동안 희귀질환의 대부분은 원인조차 찾지 못했는데 이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놀라운 결과”라며 “영국은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로 암이나 희귀질환뿐만 아니라, 당뇨병, 우울증, 심장 질환 등에 관한 연구 결과도 발표했다”고 말했다.


같은 달 18일 UK 바이오뱅크는 20만 명의 전장 게놈 해독 데이터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공개했다. 90개국 2만 명 이상의 연구자가 UK 바이오뱅크의 데이터를 사용하기 위해 등록을 마쳤다. UK 바이오뱅크는 2025년까지 25페타바이트(PB·1페타바이트는 1000조 바이트)에 달하는 게놈 데이터를 공개할 예정인데, 클라우드 서비스인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과학자들이 이 데이터에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돕기로 했다.

 

 

○ 한국 대규모 게놈 분석을 위해 규제부터 풀어야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 ‘코레프’.  박종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팀은 2016년 한국인 41명의 게놈 정보를 통합해 국민 표준 게놈 지도 ‘코레프’를 완성했다. 옆 그림은 인간 염색체 8번 영역의 일부로 회색은 인간 참조 게놈에는 나타나지 않는 영역이다. 이는 인간 표준 게놈 지도가 어느 집단을 대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과학동아DB
한국인 표준 게놈 지도 ‘코레프’. 박종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팀은 2016년 한국인 41명의 게놈 정보를 통합해 국민 표준 게놈 지도 ‘코레프’를 완성했다. 옆 그림은 인간 염색체 8번 영역의 일부로 회색은 인간 참조 게놈에는 나타나지 않는 영역이다. 이는 인간 표준 게놈 지도가 어느 집단을 대표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네이처 커뮤니케이션/과학동아DB

영국 외에도 미국, 싱가포르, 핀란드, 에스토니아 등 여러 국가가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아이슬란드는 자국민 전체의 게놈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나라마다 자국민의 게놈 데이터를 수집하는 이유는 어느 게놈 지도도 인간을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 관한 표준 게놈 지도인 ‘인간 참조 게놈’이 있지만, 백인을 중심으로 분석해 다른 인종과는 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18년 스티븐 살츠버그 미국 하버드대 존스홉킨스 바이오의공학과 교수는 20개국에 사는 아프리카계 사람 910명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 인간 참조 게놈 지도에 없는 염기서열 약 3억 개를 발견했다. 이는 아프리카계 사람이 표준 게놈보다 유전자 다양성이 최대 10% 높을 수 있다는 의미다. doi: 10.1038/s41588-018-0273-y 정밀한 질병 진단을 위해선 각 나라의 연령 별, 인종 별, 집단 별 게놈 데이터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도 현재 규모는 다른 국가보다 작지만, 한국인의 게놈을 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2015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울산시가 시작한 ‘게놈 코리아 프로젝트’다. 2016년 한국인 40명의 게놈 정보를 통합해 국민 표준 게놈 지도인 ‘코레프(KOREF)’를 완성했다. 분석 결과, 코레프에도 기존의 인간 참조 게놈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또한 인종에 따른 유전적 차이도 찾아냈다. 인간 참조 게놈 지도를 기준으로 한국인 1명의 돌연변이는 400만 개였는데, 코레프를 활용하면 300만 개로 25% 감소한다. 100만여 개는 인종 차이에 따른 변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게놈 코리아 프로젝트는 점점 분석 수를 늘려 2020년 5월에는 한국인 1094명의 게놈을 해독한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고, 지난해 4월에는 초기 목표였던 1만 명 게놈 해독을 완료했다. 게놈 코리아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박 교수는 “게놈 분석 수가 늘면 늘수록 질병을 진단하는 능력은 정확해진다”며 “한국도 100만, 1000만 게놈 분석 프로젝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규모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울산에서 게놈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울산은 ‘게놈서비스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는 데 여러 제약을 두고 있다. 생명윤리법에는 유전자 검사의 동의, 기록 보관 및 정보의 공개, 검사 대상물의 제공과 폐기 등에 관한 규정이 있으며 개인 정보(유전자 정보) 처리의 방침 수립과 정보 보호 책임자 지정 등은 개인정보보호법을 따라야 한다. 


현재로서는 이 규정에 따라 각 의료 기관에서 수집한 유전자 정보를 다른 곳에서 활용할 수 없다. 박 교수는 “이 규제를 해제하지 않으면 UK 바이오뱅크와 같이 게놈 데이터를 수집하는 핵심 기관을 설립할 수도, 운용할 수도 없다”며 “현재는 규제가 풀린 울산에 인체유래물은행인 ‘바이오 데이터팜’을 구축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 100만 명 규모의 통합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한다고 발표하며 규제 개선을 암시했다. 민감한 보건의료 데이터의 특성을 반영하고, 개인의 권리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제를 정비한다는 계획이다. 플랫폼은 유전체 등 바이오 정보와 병원 임상기록, 공공보건의료데이터를 중심으로 2025년 완성된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데이터의 안전한 활용 생태계를 갖춰야 환자 치료를 통한 의료 혁신이 가능하다”며 “신약 개발로 산업 혁신을 이루고, 국민 권익을 증진해 사회 혁신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게놈에 관한 새로운 법제도는 가능한 것을 열거하는 ‘포지티브 규제’가 아닌 이것만 하지 말라는 ‘네거티브 규제’가 필요하다”라며 “UK 바이오뱅크가 수십만 명의 데이터를 익명화, 암호화해 공개한 사례처럼 게놈 데이터는 얼마든지 완벽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게놈 데이터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얼마나 이익이 되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공격적으로 투자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과학동아 2022년 1월호 [엣지 사이언스] 윤리·데이터법 개정 물꼬 트나? 희귀질환 게놈 진단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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