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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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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N사피엔스]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2021.11.25 11:00
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에 참여한 학자들이 모여 찍은 사진. 5차 회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로, 양자역학이 만들어 낸 물리학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 논의사항이었다.  아인슈타인(왼쪽에서 다섯번째), 마리 퀴리(왼쪽 세 번째)가 보이고 둘째줄 맨 오른쪽 닐스 보어가 위치해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1927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에 참여한 학자들이 모여 찍은 사진. 5차 회의 주제는 ‘전자와 광자’로, 양자역학이 만들어 낸 물리학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핵심 논의사항이었다. 아인슈타인(왼쪽에서 다섯번째), 마리 퀴리(왼쪽 세 번째)가 보이고 둘째줄 맨 오른쪽 닐스 보어가 위치해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광양자 가설을 이용해 아인슈타인이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한 것은 빛, 즉 전자기파의 입자적인 성질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럼에도 20세기 초반에는 빛의 본질이 무엇인지, 빛을 과연 입자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없지 않았다. 만약 빛이 입자와 같은 성질을 갖고 있다면 광전효과와는 전혀 다른 현상에서 빛의 입자적인 성질을 드러내야만 할 것이다. 그런 현상이 바로 콤프턴 산란현상이다. 

 

콤프턴 산란은 미국의 물리학자인 아서 콤프턴이 1923년에 발견한 현상이다. 콤프턴은 X선을 흑연 표적에 쏘아 그때 튕겨 나오는 X선의 파장에 따른 세기를 X선의 산란각도에 따라 측정했다. 이 현상 자체는 복잡하지 않다. X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로서 흑연 속의 전자와 충돌해 튕겨 나간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튕겨 나간 X선의 파장이 길어졌는데 그 양상이 고전적인 전자기파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파장이 변하는 정도가 X선이 산란되는 각도에 민감하게 의존할 뿐 그 세기나 노출시간과는 관계가 없었다. 

 

콤프턴 효과를 발견해 복사의 입자성을 밝힌 공로로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서 콤프턴
콤프턴 효과를 발견해 복사의 입자성을 밝힌 공로로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아서 콤프턴. 위키미디어 제공

콤프턴의 실험결과를 온전하게 설명하려면 전자기파의 일종인 X선에 광양자가설을 도입해야 한다. 광양자가설에서는 X선이 파장에 반비례하는 에너지를 가진 입자, 즉 광자들의 집합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까 X선과 전자가 마치 당구공처럼 충돌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높은 에너지를 가진 광자는 전자와 부딪혀 에너지와 운동량을 전해줄 수 있다. 대략적으로 생각해보자면 그 결과 광자의 파장은 길어질 것이다. 이 과정을 상대론적으로 기술하면 특정한 각도로 튕겨나가는 광자의 파장이 얼마나 길어지는지를 정량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 그 결과는 콤프턴이 실험적으로 관측한 결과와 일치한다. 콤프턴 효과는 광전효과와 함께 빛의 입자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처럼 플랑크의 광양자 가설은 빛, 즉 전자기파의 입자적인 성질을 드러내지만 원자의 성질을 규명하고 현대적인 원자모형을 구축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전자를 발견한 톰슨과 원자핵을 발견한 러더퍼드가 그럴 듯한 원자모형을 제시했으나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서는 원자의 대부분의 질량을 갖고 있으며 양의 전기를 띠고 있는 원자핵이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고 그 주변을 전자가 도는 구조이다. 이는 태양계의 구조와 비슷하다. 


이 모형에는 큰 문제가 둘 있었다. 음의 전기를 띤 전자가 양의 전기를 띤 핵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태양 주변을 공전하는 행성들 마냥 핵 주위를 빙빙 돌아야 하는데, 19세기에 완성된 고전 전자기학에 따르면 전기를 띤 입자가 이처럼 원운동을 하면 전자기파를 방출해야 한다. 그 결과 전자는 계속 에너지를 잃어버리게 되고 공전반경이 점차 줄어들어 결국에는 원자핵으로 추락하고 만다. 또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전자기파는 마치 가시광선의 무지개 스펙트럼처럼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보인다. 이는 모두 원자에 대해 잘 알려진 사실들과 일치하지 않는다. 원자 속의 전자는 원자핵과 잘 분리돼 있다. 그리고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해 보면 연속적인 스펙트럼이 아니라 특정 파장대에서만 빛을 방출하는 불연속적인 띠 모양을 보인다.

 

태양 스펙트럼에서 나타나는 프라운호퍼 선
태양 스펙트럼에서 나타나는 프라운호퍼 선

불연속 스펙트럼은 19세기 요제프 프라운 호퍼, 데이비드 브루스터, 윌리엄 탤봇, 구스타프 키르히호프, 로버트 분젠 등을 거치며 잘 연구돼 있었다. 프라운호퍼는 태양광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을 연구하던 중 수많은 미세한 검은 선들을 발견했다. 이를 '프라운호퍼선'이라 부른다. 한편 비슷한 시기 낮은 압력의 기체를 방전하거나 불꽃에 여러 시료를 넣었을 때 특정한 파장대의 밝은 선들만 방출되는 현상도 알게 됐다. 이를 방출 스펙트럼이라 한다. 얼마지 않아 과학자들은 프라운호퍼의 검은 선들과 방출 스펙트럼의 밝은 선들이 같은 원소에 대해서는 같은 파장에서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키르히호프는 프라운호퍼선들이 어떤 원소가 특정 파장대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생기는 빈틈이라고 올바르게 해석했다. 각 원소들마다 선 스펙트럼의 양상이 파장에 따라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이는 원소들을 구분하는 일종의 지문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원소들의 스펙트럼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며 스펙트럼의 선들이 어느 파장에 해당하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수소원자의 경우 파장이 410.2㎚ , 434.1㎚, 486.1㎚, 656.3㎚인 곳에서 선 스펙트럼이 나타난다. 여기서 ㎚은 나노미터로 부르는데 1㎚은 10억 분의 1m이다. 스위스의 학교 교사이던 요한 발머는 이들 파장의 숫자를 보고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이들 숫자를 산출하는 하나의 공식을 만들었다. 원래 숫자놀음을 좋아했던 발머는 그 어떤 물리적인 원리를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알려진 숫자들로부터 자신의 공식을 완성했다. 발머의 결과는 이후 스웨덴의 요하네스 뤼드베리로 이어져 더욱 일반화된 형태인 뤼드베리 공식으로 발전했다. 


원자모형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기 시작한 것은 닐스 보어가 등장한 이후이다. 보어는 1913년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원자모형을 제시했다. 보어의 모형은 몇 가지 가설적인 원리로 구성돼 있다. 첫째, 전자는 전자기력의 일종인 쿨롱힘에 의해 원자핵 주위를 돈다. 둘째, 전자의 어떤 궤도는 안정적이어서 전자기파를 방출하지 않고 따라서 에너지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 궤도에 있는 전자의 상태를 '정상상태'라 한다. 셋째, 전자가 높은 에너지 상태에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 옮겨갈 때 그 에너지 차이만큼이 전자기파로 방출된다. 이렇게 방출되는 전자기파의 에너지는 플랑크의 광양자가설, 즉 진동수에 정비례(따라서 파장에 반비례)하는 양으로 주어진다. 이때 비례상수가 바로 플랑크상수이다. 넷째, 정상상태의 전자의 각운동량은 어떤 숫자의 정수배로만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정수배수를 양자수라하며,  ‘어떤 숫자’는 플랑크상수를 로 나눈 값으로 '환산플랑크상수'라고 한다. 각운동량은 회전운동을 하는 물체가 갖는 운동량으로서 점입자의  각운동량은 그 입자의 질량과 선속도와 회전반경의 곱으로 주어진다. 

 

보어의 첫째 조건은 고전물리학과 다르지 않다. 둘째, 셋째, 넷째 조건은 고전물리학과 전혀 다르다. 고전물리학에서는 전자가 원자핵 주변을 돌면 전자기파를 방출하지만 보어는 그렇지 않은 안정적인 궤도가 있다고 가정했다. 그 궤도는 넷째 조건으로 주어진다. 다만 원자가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경우는 둘째 조건으로 한정했다. 넷째 조건은 '양자화 조건'이라 한다. 양자화란 물리량이 덩어리져 있어 어떤 최솟값의 정수배로만 불연속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을 말한다.

 

과학동아DB
과학동아DB

사실 양성자 주변을 공전하는 전자의 전자기파 방출은 잠시 잊고 이 전자의 운동을 고전역학적으로 기술한 다음 각운동량의 양자화조건을 적용하면 전자의 에너지는 어떤 상수 나누기 정수의 제곱으로 주어짐을 유도할 수 있다. 이 결과는 놀랍게도 뤼드베리의 결과와 비슷한 모습을 띤다. 특히 뤼드베리의 공식은 서로 다른 두 에너지의 차이만큼이 광양자가설에 따라 특정한 파장의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형태이다. 이는 보어의 셋째 조건과 부합한다.

 

발머나 뤼드베리의 결과는 실험에서 나온 숫자들을 이리저리 짜 맞춘 결과이지만 보어의 원자모형은 고전적인 물리이론에 파격적인 양자화 가설이 결합된 결과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뤼드베리의 결과를 ‘계산’할 수 있다. 특히 뤼드베리의 공식에 들어가는 뤼드베리 상수라는 값을 성공적으로 ‘유도’할 수 있었다.


각운동량이 양자화된다는 넷째 조건은 대단히 파격적인 가설이지만 보어의 이른바 ‘대응원리’로부터 유추해낼 수도 있다. 대응원리란 양자수가 대단히 클 때 보어의 양자화된 원자이론이 고전적인 이론과 일치한다는 원리이다. 수소원자에서 양자수가 아주 클 때에는 전자의 궤도가 아주 커진다. 이 경우 인접한 두 궤도 사이의 에너지와 각운동량의 변화를 계산해 보면 각운동량의 미세한 변화가 오직 환산플랑크상수로만 주어짐을 보일 수 있다. 


이 값은 말하자면 계단의 최소높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계단으로 오를 수 있는 임의의 높이는 계단의 최소높이(환산플랑크상수)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 원자 내 전자의 각운동량 값도 그렇게만 존재한다. 대응원리에 의한 결과는 양자수가 클 때에 적용되지만 보어는 각운동량의 양자화가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가정했다. 

 

보어의 원자모형은 1913년 3부로 이루어진 논문에 발표되었다. 이들 논문에서 보어는 원자의 선 스펙트럼 뿐만 아니라 원자에서 방출되는 X선, 원소들의 화학적 성질, 분자의 구성 등도 함께 논의했다. 보어는 원자의 구조와 성질을 연구한 공로로 1922년 노벨 물리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했다.

보어가 1913년에 발표한 첫 번째 논문의 첫 페이지
보어가 1913년에 발표한 첫 번째 논문의 첫 페이지

보어의 원자모형은 고전역학에서 양자역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전이지대를 점하고 있다. 보어모형은 완전히 양자역학의 원리로부터 원자의 구조와 성질을 규명한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고전역학의 토대 위에 양자역학의 핵심 가설들을 접목해 실험결과들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그래서 보어모형을 '준고전적 이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완전한 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보어모형은 일차적인 근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후적인 평가일 뿐 1910년대의 관점에서는 가히 혁명적인 진전이요 양자역학으로 향하는 중요한 징검다리였다고 할 수 있다. 고전역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역학체계로서의 양자역학이 출현하려면 1925년의 하이젠베르크까지 기다려야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보어의 업적을 두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발전과 함께 이 둘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둘 다 양자역학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보어는 양자역학의 영원한 태두로 남아 있고 아인슈타인은 끝내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천재가 됐다. 보어의 원자모형은 얼마지 않아 여러 차례에 걸친 실험으로도 검증됐다.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1885~1962). 그는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시해 광전효과 등 당시 고전물리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을 단번에 설명해냈다. 과학동아DB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헨리크 다비드 보어(1885~1962). 그는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시해 광전효과 등 당시 고전물리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현상을 단번에 설명해냈다. 과학동아D

※참고자료

N. Bohr, On the constitution of atoms and molecules, Phil. Mag. 26:1, 1913.

R.A. Serway, C.J. Moses, C.A. Moyer, Modern Physics, 3dr Ed., Thomson Brooks/Cole.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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