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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우리는 왜 '미루기의 달인'이 되어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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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의 사회심리학]우리는 왜 '미루기의 달인'이 되어가는가

2021.06.05 05: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고백하자면 필자는 미루기의 달인이다.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할 거라거나 어차피 마감이 가까워지면 글을 쓰게 되어 있다는 생각들이 삶의 신조인 것 같기도 하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인지 미루기는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자기통제 실패 사례다. 


이후 분명 괴로워질 것임을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미루는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지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있었고 다음과 같은 가능성들이 제시됐다. 우선 예상할 수 있겠지만, 기질적으로 자기통제력이 약한 경우, 즉 바람직한 결과를 얻기 위해 지금의 행동을 조절하는 힘이 약한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미루기를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그때 그때 다른 자기통제력 


이렇게 사람마다 기본적으로 타고난 자기통제력에 차이가 있지만, 자기통제력은 상황과 맥락의 영향 또한 많이 받는다. 자기통제력은 구체적이고 뚜렷한 목표의 존재(목표와 동기),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았을 때의 결과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능력(장기적 시각),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아는 것(정보와 전략, 지식), 스트레스와 피로 수준(남아있는 정신력의 양) 등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이 중 하나라도 삐끗하면 아쉽게도 자기통제에 실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예컨대 미루기의 경우 아무리 이번에는 데드라인을 꼭 맞추겠다는 목표가 뚜렷하고 일을 차일피일 미뤘을 때 미래의 내가 맞이할 고통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일을 제때 마무리 하기 위한 계획 같은 것을 다 세워 놓아도 “너무 피곤해서” 또는 스트레스가 많아서 정작 몸과 마음을 움직일 힘이 없다면 이번에도 또 미루고 마는 식이다. 

 

완벽주의자는 게을러진다


미루기를 불러오는 또 다른 요소는 의외로 '완벽주의'다. 완벽주의의 경우 세 가지 경로로 미루는 행동을 불러온다.

 

첫 번째는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다. 지인 중 조금 지각할 것 같으면 아예 모임에 나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시간 엄수에 대한 강박이 지나친 나머지 어쩌다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으면 아예 약속에 나가지 않음으로써 지각을 원천봉쇄하곤 했다. 이 외에도 승부욕이 큰 나머지 게임에서 질 것 같으면 아예 게임을 시작도 하지 않는 등,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결말'에 대한 과한 집착으로 인해 여기서 벗어나는 다른 결말을 받아들이느니 아예 판을 엎어버리겠다고 하는 다소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모 아니면 도인 경우다. 


두 번째는 일을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계속 붙잡고 있느라 일을 제 때 마무리 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림이 마음에 들 때까지 덫칠에 덫칠을 반복해서 처음 스케치와는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처음 버전이 제일 좋았던 것 같다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경우다. 하지만 또 수정의 수정을 거치는 일을 반복하는 등 영원히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되겠다. 


세 번째는 스트레스와 에너지 고갈이다. 눈치챘겠지만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결과에 대한 생각이 너무 확고한 탓에, 거기서 하나라도 달라지면 쉽게 좌절하고 불만족스러움을 느낀다. 아무도 모르고 본인만 느끼는 그 작은 차이를 매꾸는데 전력을 다 하고 그 과정에서 큰 스트레스와 에너지 소모를 겪는다. 


완벽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일상 속의 모든 경험을 '일', 즉 스트레스 거리로 변환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예컨대 독서 같은 취미 생활도 완벽주의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하면 "무엇을 하든 열심히, 잘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하루에 반드시 100페이지는 읽어야 한다는 빡센 목표를 세우는 등 취미였던 것이 어느 새 일이 되고 만다. 오늘도 100페이지 읽기에 실패했다며 좌절하고, 분명 쉬려고 했는데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에게 괴로움을 주고만 책 읽기를 미워하게 되고, 취미 생활 조차 잘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는 등 온갖 것에서 감정과 에너지 소모를 겪는다. 슬프게도 이런 만성적인 에너지 고갈 상태는 정작 중요한 일을 하는 데 쓸 에너지 부족을 불러오고,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게으른(게을러 보이는) 상태를 만든다. 

 

미루기의 기쁨과 슬픔


이렇게 자기통제력을 발휘할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또는 지나친 완벽주의 때문에 미루기를 '못' 피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외로 미루기를 즐기느라 미루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영국 셰필드대 심리학자 푸시아 시루아 교수에 따르면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뤘을 때 지금 당장 느껴질 해방감과 기쁨을 크게 인식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기꺼이 일을 미루는 경향을 보였다. 오늘만큼은 덜 고통스럽게 보내겠다며 “내일의 일은 내일의 내가 하겠지”하고 기쁜 마음으로 폭탄을 넘기는 것이다.


또 데드라인 직전까지 미루고 벼락치기로 일을 마무리하는 스릴과 효율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불안을 자극제로 삼아 업무 효율을 늘리는 경우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불안과 긴장을 극도로 높여 일을 할 수 밖에 없도록 자신을 몰아붙이는 행위가 장기적으로도 건강과 행복에 이로울지는 의문이다. 


진정으로 나를 위한다는 것


정리하면 자신을 향한 지나치게 높은 기준과 채찍질, 에너지 고갈, 내일의 나에게 고통을 토스하고 일단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욕구, 또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밀어서 효율성을 짜내는 등의 습관이 미루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기 자비(self-compassion)’가 미루기를 완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시루아 교수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에게도 인간적이고 따듯한 태도를 보일 줄 아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일단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을 덜 보인다. 스트레스와 부정적 정서도 덜 겪는 편이다. 자신에게 친절할 줄 아는 사람은 오늘의 고통을 내일의 자신에게 전가하는 행동이나 내일의 자신을 착취 하면서 일하는 습관 또한 덜 보일 것으로 생각된다. 


사랑하는 친구나 자녀가 자신을 지나치게 밀어붙이거나 또는 미래의 자신에 대해 무책임한 행동을 보일 때, 잘 하고 있다며 계속해서 밀어붙이다가 아예 벼랑 끝에서 떨어져 버리라는 사람음 없다. 어제 오늘 차곡차곡 미뤄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업무에 곧 깔려 죽으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돌보듯, 진정으로 자신을 보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의 나 뿐 아니라 내일의 나 또한 보살피려 할 것이다. 


필자를 포함해 미루기를 밥 먹듯 하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인간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과 당연히 나 또한 그렇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또 나를 밀어붙이고 착취해서 단기적인 성공을 노리기보다 미래의 나와 내 삶까지 돌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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