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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21세기 교양교육의 핵심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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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21세기 교양교육의 핵심은 ‘과학’

2021.04.14 12:00
비판적 합리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 구성원들의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밖에 없다. KBS1 TV ‘도전 골든벨’ 방송화면 캡쳐

대학의 교양교육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집중되어 있다. ‘과학’ 분야의 교양교육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과학 교양교육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조차 분명치 않다. 마지못해 개설된 수학・과학 분야의 교양과목의 내용도 과학의 기본 개념이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어설프게 정리한 과학사나 과학의 기능적 특성과 유용성을 단편적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현대 과학의 본질이나 의미를 극단적으로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다. 


대학교육협의회의 교양기초교육원이 과학 분야의 본격적인 교양교육을 위한 교재를 개발했다. 평소 대학의 진정한 과학 교양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18명의 과학자가 집필한 ‘과학 산책, 자연과학의 변주곡’(교양기초교육원 교양과학연구회, 청아출판사, 2020)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사회가 요구하는 비판적 과학정신

 

현대 과학의 분과에서 활용하고 있는 복잡한 개념과 법칙을 정교하게 가르치는 과학 교양교육은 비현실적이다. 특히 ‘문과’와 ‘이과’로 구분된 고등학교에서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조차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 본격적인 과학 교육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과학 교양교육을 통해서 학생들이 현대 과학을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과학산책’이 가장 강조하는 목표는 복잡하고 난해한 21세기 현대를 살아가는 교양인으로서 현대 과학적 세계관을 통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의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다. 과학적·논리적·통합적·실증적 사고를 몸에 익혀서 실생활에서 직면하게 되는 일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주는 것이 과학 교양교육의 목표라는 뜻이다. 특히 현대 과학이 단순한 흥미나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예술·인문·사회과학과 동일한 수준의 교양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주와 같은 거시 세계에서부터 기본입자와 같은 미시 세계에 이르는 모든 규모에서 세상을 이해하고,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생명이 정체불명의 ‘생명력’을 갖춘 신비의 존재가 아니라 현대 과학을 통해서 그 정확한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인문학과의 상호보완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미래지향적 문화를 창출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과학 교양교육은 민주화된 현대 사회에 절박하게 요구하는 사회적 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수단이 되어야만 한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민주적 의사결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민주사회의 구성원이 스스로 이슈를 이해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해서,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비판적 합리주의를 적극적으로 실천할 능력과 의지를 갖추지 못한 구성원들의 공동체에서 민주주의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수밖에 없다.

 

과학 교양교육의 구성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과학 교양교육의 교수법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과학의 폭과 깊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고, 과학 교양교육이 지향하는 목표도 역시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결국 과학 교양교육은 교수와 학생의 선택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화시킬 수 있다.


 ‘과학산책’은 고등학교 교육에서 고착화되어버린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의 분과적 구분을 과감하게 포기했다. 오히려 교수가 자신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대분류’와 ‘소주제’를 선택해서 학생들에게 현대 과학의 정체와 가치를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대분류’는 현대 과학의 전체를 조망하고 이해하기 위한 구분이다. 과학의 본성, 과학 법칙의 의미, 시공간과 우주, 미시세계, 지구 환경, 생명, 기술과 사회의 7개로 구성된 장이 그런 대분류에 해당한다. 대분류를 통해서 현대 과학적 세계관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인류의 지속적인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개관할 수 있다. 가능하면 7개의 대분류를 모두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자유로운 취사선택도 충분히 가능하다.


현대 과학은 매우 조밀하고 복잡하다. ‘대분류’에 포함되는 다양한 ‘소주제’를 개발할 수 있다. 그런 소주제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나름대로의 엄격한 위계에 따라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을 구성한다. 물론 과학 분야의 전공 교육에서는 학문적 연계성과 위계성을 강조해야만 한다. 그러나 과학 교양교육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소주제들 사이의 학술적 연계성보다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스토리 라인’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과학산책’에 제시한 내용을 모두 가르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과학’을 우주·지구·생명으로 구분하고, ‘기술’을 정보·식량·에너지로 구분했던 고등학교의 2009 개정 ‘융합형 과학’의 경우에도 그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과학산책’에서 소개하는 내용은 21세기를 살아가야 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필수 상식’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수의 관심과 전공에 따라 지식의 깊이를 적절하게 조절함으로써 과학 교양교육의 목표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 교양교육의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교수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과학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시대착오적인 인문학이 교양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은 21세기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절망적인 것이다. 현대 과학과 기술이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말살시켰다는 황당한 마타도어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현대 과학에 대한 최소한의 교양교육조차 받지 못한 ‘문과’ 학생들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노력이 절박하게 요구되는 상황이다. 우리의 삶이 ‘풍요와 평화’와 ‘파국과 파멸’ 중 어느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인지는 과학 교양교육의 성패에 달려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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