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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인간은 어떤 곳에 살고 싶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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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동의 진화] 인간은 어떤 곳에 살고 싶어하는가

2021.03.20 08:10
새 아파트는 인공적이면서 자연적이다. 안전하면서 높고 조망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아도 회복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연합뉴스 제공

우리는 어디에 살고 싶을까. 서울 강남의 아파트일까, 미국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 사이드일까, 아니면 일본 도쿄의 긴자일까. 물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좀 더 근원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살고 싶은 곳에 관한 인간적 본성이다. 원시시대에는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할 수 없었으므로, 시장 가치보다는 다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을 것이다. 수백만 년 동안 우리의 게놈 속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진화적 고향으로서의 서식지다.

 

 

서식지와 생존

 

동물은 종 특이적으로 좋아하는 서식지가 다르다. 추운 남극에 사는 펭귄을 보며, ‘얼마나 추울까?’라고 여기면 곤란하다. 펭귄에게는 그곳이 최적의 서식지다. 먹이도 찾고, 짝도 만나고, 새끼를 낳아 키울 수도 있는 곳이다. 물론 추운 기후 덕분에 포식자도 적다. 오들오들 떠는 펭귄에게 보일러를 놔주겠다는 마음이 든다면, 너무 인간 중심적인 공감이다.


사실 남극에 사는 펭귄은 황제펭귄이나 아델리펭귄 등 일부에 지나지 않고, 다양한 생태적 환경에 흩어져 지내고 있다. 그리고 각 종은 자신의 최적 서식지에 관한 강한 본능적 선호를 보인다. 펭귄에게 보일러를 놔주는 실수도 이상하지만, 무조건 얼음이 가득한 곳을 좋아할 것으로 생각해도 문제다. 갈라파고스나 호주,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서식지로 삼고 있는 펭귄도 있다.


서식지에 관한 동물의 반응은 선천적 본능이지만, 계통학적 진화사 및 생태적 환경에 대한 적응을 통해서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 핵심에 바로 생존과 번식이 있다. 동물이 좋아하는 서식지는 생존, 그리고 번식에 유리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유리했던 곳이다. 물론 인간도 그렇다.

 

 

인간의 서식지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사람들에게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고 어디에 살고 싶은지 물었더니, 많은 이가 사바나를 골랐다. 골프장이 사바나의 자연환경을 흉내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서식지의 차별성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은 바로 기후다. 기후가 식생을 바꾸고, 먹잇감의 종류나 포식의 위험성도 일으키고, 종내 경쟁 및 번식 기회도 만들어낸다. 독일의 블라디미르 쾨펜은 기후를 구분하는 분류 체계를 고안했는데, 나중에 루돌프 가이거가 수정해서 이른바 쾨펜-가이어 기후 분류라는 것을 제안했다. 보통은 그냥 짧게 쾨펜 기후 분류라고 부른다.


이 기준에서 열대 기후는 대문자 A로 표기한다. 총 네 기후로 나뉜다. 첫째, 열대우림기후(Af)다. 항상 비가 많이 오고 더운 기후다. 주로 적도 지방인데, 잎이 넓은 나무가 무성한 정글이다. 다양한 동식물이 우글거린다. 인도네시아의 날씨가 이렇다. 둘째, 열대몬순기후(Am)다. 계절풍이 부는 지역인데, 여름에는 우기가 찾아오고 겨울에는 짧은 건기가 찾아온다.

 

베트남 중부의 기후다. 셋째, 열대하계소우기후(As)다.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 건조하다. 멕시코 서부가 그렇다. 넷째, 사바나기후(Aw)다. 열대우림이나 열대몬순기후의 주변에 나타나는데, 아주 광대한 지역이 이러한 사바나기후다. 아프리카의 자연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주로 보는 기후다.


사바나는 일 년 내내 덥고, 계절이 분명하지 않다. 우기와 건기가 나뉘는데, 건기가 제법 길어서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풀이 많이 자란다. 긴 풀이 대지를 덮고 있고, 이따금 나무가 보이는 거대한 평원이다.


초기 진화인류학자는 인류가 이러한 사바나기후에서 진화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인류의 마음에는 사바나를 그리워하는 강력한 향수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이른바 사바나 이론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나 산이 없으니 멀리 내다볼 수 있다. 원하면 간간이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쉬어도 된다. 식물성 식량이 풍부하다. 풀이 무성하니 풀을 뜯어먹는 초식동물도 많고, 모두 적당한 사냥감이다.


흥미롭게도 골프장이 사바나의 자연환경을 흉내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너른 잔디밭과 가끔 보이는 그늘집, 연못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다양한 풍경을 보여주고 어디에 살고 싶은지 물었더니, 많은 이가 사바나를 골랐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살고 싶은 원시적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낙토다.

 

 

안전한 은신처

 

하지만 인간은 정말 사바나의 환경을 좋아할까? 골프장의 조경은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골프장 한 가운데 집을 짓고 살라면 좀 꺼려진다. 아마 이런 항변을 하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성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이라면 정말 살고 싶다고 말이다. 사실 독일까지 갈 것도 없다. 50층이 넘는 주상복합아파트의 고층은 늘 인기인데, 단지 투자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뭐 투자 가치도 결국 인간의 선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니 말이다.


영국의 지리학자 제이 애플턴은 서식지 이론에 관해 이른바 전망과 도피 이론을 제안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좋은 서식지는 일단 높아야 한다.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쉽게 찾고, 물론 짝도 찾는다. 또한 숲이 울창하거나 산과 언덕 등으로 잘 가려져 있어야 한다. 물도 적당히 흘러야 한다.


전망이 좋으면서, 동시에 안전하다는 물론 전망과 안전은 다소 상반되는 가치다. 전망이 너무 좋으면 공격에 취약하고, 안전한 은신처는 전망이 좋지 않다. 흥미롭게도 인간에게는 어느 하나를 더 선호하는 개인차가 있다. 야심 차게 살아가는 긍정주의자는 전망이 좋은 곳을 선호하고,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사람은 안전한 은신처를 좋아한다. 이건 그냥 해본 생각이지만, 고층 아파트는 전망이 좋고, 대단지 아파트는 안전하게 도피하기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대단지 고층 아파트를 좋아하는 것일까.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강조한 아파트 단지.  GS 건설제공

 

미스터리한 장소

그러나 인간은 식량이 많고, 안전하고, 전망 좋은 은신처만 좋아할까? 그럴 리 없다. 심리학자 레이첼 카플란과 스테판 카플란은 인간에게 이른바 회복과 복원을 위한 환경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둘은 부부다). 주의회복이론이라고 한다. 이는 집중을 통한 정신적 피로가 누적되면, 자연환경에 노출되는 방법으로 회복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 다시 사바나인가. 아니다. 카플란 부부는 매력적인 장소가 우리를 회복시켜둔다고 하였다. 여기서 매력적 장소란, 미스터리하고 흥미로운 장소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바위 사이를 지나가는 개울의 물 튀는 소리, 어디선가 들리는 새소리 등이다. 이는 식량이 많은 곳도 아니고, 안전한 곳도 아니며, 전망이 좋은 곳도, 짝이 있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적당히 ‘척박’하고,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막혀있고’, 적당히 ‘외로운’ 곳이다. 다양한 연구를 통해서 이러한 장소가 정신적인 치유를 이끈다고 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조상이 좋아하던 정자가 주로 이런 곳에 지어졌다.

회복을 위한 환경은 다음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 일단 매혹적이어야 한다. 관심을 끄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비밀의 정원이다(Fascination).  좀 낯설고 떨어진 장소여야 한다. 매일매일 살고 있는 일터에서 떨어진 곳이다.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 좀 거리감이 있는 장소다(Being away). 그리고 확장성 혹은 연결성이다. 환경의 여러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야 하고, 그러한 환경 속에서 신비한 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Extension). 마지막으로 호환성이다. 삶의 목적이나 개인의 취향과 걸맞은 환경이어야 한다(Compatibility).

 

우리 사회 서식지의 변화
사바나 풍경.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신비한 비밀의 장소, 아주 멀지는 않지만 적당히 떠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약간 외딴 곳. 그러면서도 일상을 이어갈 수 있는 곳. 어디일까.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먹고살기 힘든 1960~1970년대 한국에서 가장 좋은 서식지는 바로 자원이 많은 곳이었다. 직장도 있고, 학교도 있고, 짝도 있는 곳. 바로 대도시다. 사람들은 다들 대도시로 몰려갔다. 깊은 향수병에 걸려 고향을 그리워했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너른 고향 집을 두고, 좁은 달동네에서 복닥거리며 살았다.


어느 정도살만 해지자 미래를 내다보기 시작했다. 고층 아파트가 올라가던 때다. 수십층 아파트를 닭장집이라면서 꺼리는 사람도 있었지만, 야심이 많은 사람은 재빨리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높은 곳에 살면서, 더 멀리 볼 수 있었을까?분명 그런 느낌은 받을 수 있었을테다.


거대한 익명 사회 속에서 살다보니,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아파트에 담장이 생기고, 출입통제문이 생기고, 보안현관문이 생겼다. 점점 거대한 단지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과 너무 떨어진 느낌도 들었다. 그래서 지상에는 차가 없어지고, 아파트 단지는 거대한 공원처럼 예쁘게 꾸며졌다.

 

우리 땅에 지어지는 새 아파트는 인공적 사바나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현대적 스타일의 노이슈반스타인성이다. 인공적이면서 자연적이다. 안전하면서, 높고, 조망도 좋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아도 회복을 위한 공간은 아니다. 생존과 번식, 안전과 미래를 위해 좋은 곳이고, 투자로서도 제격이지만, 뭔가 부족하다. 만약 아파트에서 정신적 피로를 해소할 수 있다면, 주말마다 수많은 사람이 익숙하고 편한 집을 떠나 불편한 곳에 텐트를 치고, 단칸방 펜션에서 잠을 청할 리 없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서식지의 조건은 회복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잘 모르는 신비한 비밀의 장소, 아주 멀지는 않지만 적당히 떠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약간 외딴 곳,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정원 같은 곳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일상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곳이다. 아, 이러한 장소가 주는 또 다른 이점이 있다. 집값이 싸다. 뭐, 어떤 사람은 그걸 치명적인 단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인류학 및 진화의학을 강의하며, 정신장애의 진화적 원인을 연구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에 '내 마음은 왜 이럴까' '인류와 질병'을 연재했다.  번역서로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행동과학》,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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