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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과학기술의 추락을 부추기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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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의 과학세상] 과학기술의 추락을 부추기는 정부

2021.02.10 15:04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난 4일 대전지방법원이 기초과학연구원(IBS)의 김진수 수석연구위원에게 제기됐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김 박사를 수천억 원의 특허를 가로채고, 연구비를 유용한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였던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용렬하고 무책임한 언론 폭로가 2년 4개월 만에 법적으로 끔찍한 억지였음이 밝혀진 셈이다. 과학계의 입장에서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IBS의 단장 직까지 빼앗겨버린 김 수석연구위원이 과연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여당 초선 의원으로 어쭙잖은 공명심에 들떠 있었던 박용진 의원의 솔직한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먼 산만 보고 있었던 과기부도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과기부의 실수는 그뿐이 아니다. 작년에 검찰의 혐의 없음 판단으로 끝난 신성철 KAIST 총장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감사와 고발에 대한 진솔한 사과도 꼭 필요하다.

 

소가 들어도 웃을 논란

 

우리 사회에서 과학기술의 위상은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연구개발 예산을 사용하는 과학자가 연구윤리와 연구개발사업의 관리규정을 확실하게 지켜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부당한 연구비 집행과 관리규정 위반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대응해야 한다. 윤리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과학기술은 사회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은밀한 투서와 정치인·관료들의 자의적인 해석만을 근거로 불합리하고 가혹한 처벌을 반복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신성철 총장과 김진수 수석연구위원에 대한 정부의 문제 제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야말로 소가 들어도 웃을 어처구니없는 논란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신성철 KAIST 총장은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 시절 국가 연구비를 횡령해 2013년부터 22억 원에 이르는 돈을 LBNL X선 연구센터에 보내 절반 가량을 제자 인건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 LBNL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LBNL). LBNL 제공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이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와 공동연구를 추진하면서 지저분한 연구비 뒷거래를 했다는 것이 과기부 감사관의 지적이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물리학 연구소인 LBNL이 DGIST와 뒷거래를 했다는 주장은 누구에게도 설득력이 없는 황당한 것이었다. 번지수가 틀려도 너무 크게 틀려버린 문제 제기였다. 그런 모함을 하려면 제3세계의 이름 없는 허름한 기관과의 공동연구 계약을 찾아냈어야만 했다.


결국 어렵사리 성사시켰던 버클리와의 공동연구는 과기부 감사관의 허접스러운 감사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우리 과학계도 전 세계 과학계의 우스갯감으로 전락해버렸다. 검찰이 과기부의 고발을 ‘혐의 없음’으로 판단한 후에도 과기부 차원에서 부끄러운 실수에 대한 사과와 유감 표시는 없었다. 오히려 당시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차관과 감사관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학계의 입장에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김진수 수석연구위원의 특허에 대한 논란도 황당한 일이었다. 김 수석연구위원의 특허는 아직도 상용화에 이르지 못했고, 아무도 수천억 원으로 평가해주지 않고 있다. 상용화가 되지 않은 특허의 가치는 어리숙한 국회의원이나 신문기자가 함부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런 특허의 가치 평가가 거래의 상대와 시기에 따라 널뛰듯 변하더라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에는 상용화 이전의 특허를 합리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합법적인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수천억 원의 특허를 가로챘다’고 우긴 정치인의 허풍도 대단한 것이었고, 그런 허풍을 고스란히 보도한 언론도 부끄러운 일을 한 셈이었다. 연구비 관리의 문제도 유용이나 횡령이 아니었다. 오히려 IBS의 회계 관리가 충분히 철저하고, 투명하지 않아서 생긴 혼란이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
  
흔들리는 과기부의 정체성

 

연합뉴스 제공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연합뉴스 제공

교육과학기술부와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쳐 어렵사리 되살아난 과기부의 정체성이 묘하게 변해버렸다. 과기부의 가장 오랜 업무였던 원자력 진흥은 탈원전에 떠밀려 실종되어 버렸고, 느닷없이 되살려놓은 혁신본부도 잘못된 첫 인사로 존재감을 잃어버렸다. 참여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했던 우주개발도 시들해졌다. 처음부터 과학기술과 거리가 멀었던 과기부의 초대 장관은 과학기술 정책보다 국무위원들의 화합에 더 많은 신경을 썼던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정체성이 불확실해진 과기부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심지어 작년 2월 우리 바이오벤처들이 세계 최초로 진단 키트를 개발했을 때도 과기부는 철저하게 침묵했다. 실제로 코로나19의 방역에서 과학기술은 완전히 밀려나 버렸다. 비대면 원격교육에 필요한 정보통신 기술의 개발에 노력하겠다는 정도가 고작이었지만 그마저도 이제는 시큰둥해졌다. 일본과의 무역 갈등으로 시작된 소재·부품·장비 산업에 대한 투자도 과기부가 아니라 기재부가 챙기고 있었다. 느닷없이 막중한 국정과제로 떠오른 그린뉴딜과 탄소중립도 과기부의 관심사는 아닌 모양이다.

 

과학기술계 역시 활기를 잃어버리기는 마찬가지다. 신성철 총장의 혐의 없음이나 김진수 수석연구위원의 무죄 판결을 반기는 목소리는 없었다. 출연연 기관장의 부당한 해고에 대한 반발도 없다. 무차별적인 탈원전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이 무너지고, 무작정 지어놓은 4대강 보를 또 무작정 해체해버리는 상황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바라보고 있다. 엎친 데 덮친다고 과기부도 과학기술의 진흥보다 과학자에 대한 감시·감독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과기부가 과학기술을 지켜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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