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본문바로가기

동아사이언스

[박진영의 사회심리학]베풀지 못하는 자는 남의 호의를 인식하지 못한다

통합검색

[박진영의 사회심리학]베풀지 못하는 자는 남의 호의를 인식하지 못한다

2020.09.19 06:00
평소 베푸는 마음이 적었던 사람들은 호의를 만나도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평소 베푸는 마음이 적었던 사람들은 호의를 만나도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 타인과 세상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말인데 해가 다르게 그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말이다. 
늘 시니컬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은 썪었고 자신이 속한 집단들도 전부 부패했으며 주변 사람들도 다 하이에나 같은 비열한 인간들 밖에 없다고 했다. 서로를 배려할 줄 알고 희생적이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어딜가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만 있어서 문제라고 했다. 그러던 그가 돌연 태도를 바꾸게 된 사건이 있었다. 늘 자신의 푸념을 묵묵히 들어주던 친구가 어느 날 “다른 건 모르겠지만 너 같은 사람만 있는 사회는 확실히 사랑과 배려가 없을 것 같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자신도 딱히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거나 또는 정의를 위해 싸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늘 이런저런 고귀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남탓만 했지 정작 본인이 고귀한 사람이 될 생각은 못했다고, 자신이 그렇게나 욕하던 깨어있지 못한 인간이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타인의 부족함을 욕하는 것만으로 자신은 그런 우매한 대중과 다르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있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런 생각들을 접하면서 나 역시 이제는 내게 누군가를 판단하고 욕할 ‘자격’ 같은 건 없음을 잘 인식하고 있다. 우리는 다 부족하고 한계가 많은 존재이기 때문에 도덕적 우월감에 빠져 타인을 공격할 시간에 서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또한 안다. 세상에 사랑과 배려가 없는 것이 아니라 나부터 사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사실 또한 여러번 되새겨본다. 나라도 작은 배려를 실천한다면 세상에는 작은 배려가 태어나게 되는 것이니까. 깊은 동굴 속에서 혼자 은거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면 내가 평가하고 욕하는 세상에는 나 역시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것이다. 세상이 돼지인 데에는 내가 돼지인 것도 한 몫 할 것이며 부처를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평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부처를 더 잘 만나더라는(알아보더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미국 메인대 브랜든 크로슬리 연구원 등은 평소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돕고 싶어하는 등 주변 사람들의 안녕에 관심이 많으며 따듯하게 보살피길 좋아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팍팍 주는 과제를 시킨다. 면접을 보는 것처럼 평가자들 앞에서 짧은 시간 동안 연설을 하고 수학 문제를 푸는 등의 과제였다. 이 때 조건을 나누어 평가자가 우호적인 조건(끄덕끄덕, 미소, “잘 하고 있어요” 같은 반응)과 인터뷰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 우호적인 태도는 보이지 않는 중립적인 평가자 조건에서 각각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예상할 수 있듯 평가자가 중립적이기보다 우호적이고 격려해주는 사람일 때 심박, 혈압, 스트레스 호르몬이 비교적 안정적이며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평소 타인에게 너그럽고 우호적인 사람에 한해 나타났다. 평소 다른 사람들을 별로 돕지 않는 사람들은 우호적인 평가자를 만나도 일반적인 평가자를 만난 것 만큼이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즉 평소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호의를 베풀어온 사람들은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좋은 사람임을 잘 알아보고 그들의 호의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반대로 평소 베푸는 마음이 적었던 사람들은 호의를 만나도 이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세상에는 더 이상 호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실제로 없는 게 아니라 있는 호의를 호의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타인에게 먼저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은 평소 주변 사람들로부터 우호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돈독한 관계 또한 많은 것이라고 보았다. 그 결과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실제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의 풀이 많고 이것이 다시 사람에 대한 믿음과 우호적인 태도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보았다.  


또 이들은 본인이 다른 마음을 먹고 남을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때 남들 역시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한다. 그 결과 도움을 요청하는 데 부담이 적고 받고 나서도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이 가능하다. 도움을 주거나 받을 때 서로 계산기 두드리고 생색내다가 되려 어색해지는 일이 적다는 것이다. 

 

물론 안타깝게도 타인을 쉽게 믿을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어딘가 분명 좋은 사람들이 있고 언젠가 분명 자유롭게 사랑을 주고받을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역시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또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런 희망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관련자료 

Cosley, B. J., McCoy, S. K., Saslow, L. R., & Epel, E. S. (2010). Is compassion for others stress buffering? Consequences of compassion and social support for physiological reactivity to stres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46, 816-823.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관련 태그 뉴스

이 기사가 괜찮으셨나요?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17 + 5 = 새로고침
###
    과학기술과 관련된 분야에서 소개할 만한 재미있는 이야기, 고발 소재 등이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제보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