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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ITX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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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에 ITX가 태어났다

2016.01.18 18:00
<12> 한성호 한국철도연구원 수석연구원

 

 

“딸랑딸랑~”

12일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레스토랑 ‘풍경’의 풍경이 겨울 바람을 타고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풍경 아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자 진한 대추향이 났다.


“여기 대추차가 참 좋습니다. 식사 후엔 대추차를 같이 드시죠.”


한성호(50)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과 자리를 잡고 앉자 한 무리의 사내들이 풍경 안으로 들어왔다. 찬 날씨 탓에 손을 호호 불면서도 한 연구원에게 인사해왔다. 철도연 사람들이다.


“철도연에서 여기까지 걸어서 10분 남짓이라 많이들 와요.”


철도연은 그의 첫 직장이다. 철도연도 그가 처음이었다. 철도연 입사 1기이자 원년멤버인 한 연구원은 올해 철도연과 똑같이 입사 20주년을 맞는다.


“철도연이 처음 설립된 1996년에는 한국교통대학(당시 철도대학) 한쪽에 비어있는 4층짜리 건물에서, 그것도 반만 빌려서 썼어요. 지금은 규모가 몰라보게 커졌지만.”

 

한 연구원은 과거를 떠올리며 소탈하게 웃었다. 철도연은 지난해 12월 완공한 건물까지 합쳐 총 11동의 건물이 있다. 출연연 중 중상급 규모로 전체 직원 302명 가운데 박사급 연구원만 221명에 이른다.

 

12일 한성호 책임연구원을 대추향이 가득한 찻집 겸 레스토랑
12일 한성호 한국철도연구원 수석연구원을 대추향이 가득한 찻집 겸 레스토랑 ‘풍경’에서 만났다. 시스템제어를 전공한 그는 고속화된 일반열차의 제어기술을 개발한 주역이다. - 의왕=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수입 불가능한 철도, 국산화가 유일한 답”


주문한지 10여 분 흘렀을까. 새하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가 새카만 뚝배기에 담겨 나왔다.


“파스타가 뚝배기에 나오니깐 특이하죠?”(한 연구원)


“뚝배기가 접시보다 ‘열용량’이 크니까 잘 안 식고 좋겠네요?”(기자)

“네, 바로 그런 거죠, 허허.”(한 연구원)


오목하고 흰 접시에 담겨 나와야 할 것만 같은 파스타가 뚝배기에 담겨 나오다니.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가 한국에 오더니 그 형태마저 ‘토착화’가 된 것 같다. 한 연구원은 “철도도 그렇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수입해올 수 있지만 철도와 열차는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단다.


“철도 기술은 무턱대고 해외의 선진기술을 수입해올 수가 없어요. 선로 폭이나 두께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지형이 다르기 때문에 각 나라에 맞는 고유한 기술을 스스로 개발하는 수밖에요.”


그는 철도연이 20년 동안 국내에서 철도 기술을 국산화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했다. 덕분에 국내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에 들어가는 기술의 99%가 국산화됐다.

 

한 연구원도 최근 새마을호를 대체해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ITX-새마을’에 탑재되는 시스템 제어장치 국산화를 이끌었다. 그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간선형 일반 전동차량 제어장치’가 ITX 열차의 ‘운동중추’가 됐다. 시스템 제어장치란 문을 열고 닫는 것부터 열차가 가고 서거나 곡선 레일을 달릴 때 열차를 적절하게 기울여 속도를 잃지 않게 하는 틸팅기술까지 포함한다.


“철도는 국가 경제의 근간이에요. 또 공공재적 성격이 강해 대학교나 기업 연구소가 끼어들 엄두를 내기 힘든 분야이기도 합니다.”

 

● “철도 기술은 태생이 융합”


‘열용량이 큰’ 뚝배기 덕분에 마지막 면 한 올까지 파스타를 따뜻하게 즐길 수 있었다. 식후엔 한 연구원의 권유대로 대추차를 마셨다. 칼칼한 맛을 보니, 대추와 함께 생강이 듬뿍 들어간 것이 틀림없다. 진한 색을 보니 이 외에도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으리라.


“철도연에도 토목, 전기, 전자, 기계 등 온갖 전공 출신 연구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철도 기술은 태생이 융합연구랍니다.”


한 연구원의 전공은 전기공학이다. 대학원에서는 시스템제어를 공부했다. 철도연은 처음부터 다양한 전공자를 모집했다. 전공이 다르다보니 저마다 생각이 달라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그는 회고했다.


“철도연에서 다양한 전공의 연구원들과 섞여 일하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꽤 자연스러워졌어요. 시행착오를 한참 겪으며 성장한 셈이죠.”

 

● 어릴 적 꿈은 슈바이처… “오지에 철도 혜택 선물하고파”


“연구자로서의 삶은 지금 딱 3분의 2 지점에 와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100세 인생에서는 딱 2분의 1 지점에 도착했죠.”


그는 철도연 입사 1기 선배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로 ‘용어 통일’을 꼽았다. 철도 연구가 토목, 전기, 기계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이다보니 사용되는 용어가 중구난방이라는 것. 또 용어뿐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 시스템 등을 통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만 닦아 놓으면 후배들이 따라오기 쉬울 터.


한 연구원의 어릴 적 꿈은 슈바이처 박사였다. 철도연의 수석연구원으로 있는 지금도 어릴 적 꿈을 잊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 발전에 철도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죠. 철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오지나 개발도상국에 도움을 주고 싶어요. 그 시점은 은퇴 후가 될 수도 있고 그 전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한 잔 가득 담겨 있던 대추차가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 연구원은 만약 2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 때도 철도연 연구자로서 삶을 살겠냐는 질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한 연구원은 ‘철도연’ 세 자로 삼행시를 지어달라는 부탁에 다음과 같이 화답했다.


없던나의 30세에 연구원에 입사해 랑치며 철길 닦으며 지내온 길이 벌써 20년이 되었네. 꽃처럼 힘과 생명력 넘치는 미래 철도기술을 피워내기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 하렵니다.”

 

대전=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철도 모형 앞에 선 한성호 수석연구원. - 의왕=이우상 기자 id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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